두 세 개의 큰 무쇠 솥에 국이 펄펄 끓는다. 하루의 노동을 마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 앉는다. 곧 밥을 토렴한 뜨거운 국물이 뚝배기에 담겨져 나온다. 국수 한 사리도 올려져 있고, 잘 썰은 고기도 넉넉하다. 사내는 곱게 썬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로 마무리 하여 즐거운 식사를 시작한다. 국물 한 방울까지도 깨끗이 비워낸 사내의 이마에 어느새 뜨거운 땀방울이 맺힌다. 그의 얼굴에 든든한 평화가 번진다.
설렁탕집의 풍경이다. 오랫동안 대중 음식으로 사랑 받고 있는 것이 설렁탕이다. 중국집에 짜장면이 있다면, 탕 음식의 대표주자로 설렁탕이 있는 셈이다.
탕반문화, 즉 국물이 있어야 밥을 먹는 것이 한국의 풍속이라지만 기본적으로 탕 요리는 가난함의 산물이다. 원재료를 여러 명이 나눠 먹으려면 국물이 최고였을테다. 설렁탕도 마찬가지. 임금이 직접 농사에 참여한 후, 소고기로 국물을 만들어 노인들을 나눠 먹였다는 유래가 설렁탕에는 있다. 그러므로 설렁탕에 붙은 서민 음식 혹은 대중 음식이라는 칭호는 적절한 것이다.
노매드에서 설렁탕 뽕빨을 준비했다. 장안의 내로라하는 설렁탕 고수집을 찾아, 진정한 설렁탕 왕중왕을 가려봤다. 첫 편은 강북이고 두 번째편은 강남이다. 이번 기사는 강북 설렁탕집 품평이다.
취재대상은 네티즌 및 맛집 블로거들의 고평가 집, 매스컴의 극찬 집, 노매드 자체 디비를 뺑뺑이 돌려, 가장 순위가 놓은 곳으로 네 곳을 선정했다. 물론 늘 그렇듯, 열분들은 이후 댓글을 통해 여러분이 알고 있는 맛좋은 설렁탕집을 첩보하기 바란다. 뽕빨은 보강취재에 의해 수정되고 완성된다.
그럼 본격적으로 강북의 최고 설렁탕집을 만나보자. (순서는 등수가 아니라 취재순이다. 왕중왕은 강남 기사까지 마치고 정리편에서 발표하겠다)
여기서 잠깐! 설렁탕과 곰탕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냐? 설렁탕은 뼈를 푹 고아낸 뽀얀 색의 국물, 곰탕은 고기위주로 고아 비교적 맑은 색의 국물이란다. 설렁탕 : 소의 여러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인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두산백과사전) 곰탕 : 쇠고기를 진하게 고아서 끓인 국물 음식이다. 쇠고기 부위 중 양지머리, 사태, 업진육, 곱창, 갈비, 꼬리, 다리를 주로 사용하며, 무를 같이 넣고 끓인다. 그러니까 기준은 뼈가 들어가느냐 (설렁탕), 아니냐 (곰탕)의 차이다. 다리랑 꼬리는 뼈로 안 치는 모양이다. |
마포옥
" 60여 년의 전통" "한우 양지 설렁탕의 대가". 자칭, 타칭 마포옥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이 집 설렁탕은 사골, 양지, 차돌 딱 세 부위로만 국물을 낸다. 이런 설렁탕이 9000원이다. 더군다나 차돌탕은 18000원.
설렁탕집을 취재하면서 했던 고민 중 하나는 가격이다. 당연히 비싼 집이 고기도 좋을 것이고, 그래서 더 맛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설렁탕은 대표적 서민음식이다. 그렇다면, 가격도 서민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9천 원 설렁탕이 거의 대세다. 그렇다면 가격 대비 음식맛으로 가자. 특 말고 기본 설렁탕으로. 이것이 결론이었다.
우선 마포옥의 김치맛부터 보자.
좌로부터 겉절이 무김치,신김치, 파김치
'설렁탕은 김치맛'이라는 분들이 많다. 실제 설렁탕집에서 김치와 깍두기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또한 집집마다 김치맛에 신경을 쓴다. 별다른 반찬 없이 오로지 김치 하나만 반찬으로 등장하니 신경을 안 쓰는 것이 더 이상하겠다.
마포옥 김치는 무난하다. 살짠 단맛(신 김치에서조차)으로 인해 시원한 맛이 떨어지지만 나쁘지는 않다. 이집은 특이하게 겉절이와 익은 김치를 동시에 내놓는다.
이제 설렁탕 맛을 보자.
설렁탕이 나오는 순간부터 살짝 불안하다. 지나치게 단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터프해 보이지도 않는 것이 김치 마냥 자기주장이 없을까 걱정된다.
맛을 보니 역시나다. 9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치고는 평범함과 무난함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냥 깔끔하고 구수한 정도라고 해야 하나.
수육을 얄팍하게 썰어 올려주는 요새 트렌드와는 좀 거리가 있다.
올려진 고기는 두툼하다. 씹는 맛도 나쁘지 않다. 다소 질이 떨어지는 고기를 편히 먹게 하기 위해 얄팍하게 썰어내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적당한 두께로 썰어내는 것도 마음에 든다. 온도를 잘 맞춘 뜨거운 국물에 토렴한 밥도 아주 잘 녹아내린다.
하지만, 그 뿐이다. 모든 것이 너무 무난하다. 국물은 그저 아 여기가 “고기님과 사골님이 몸 담고 계셨던 곳이군요.”의 그 이상을 느끼지 못하겠고 고기 두께는 마음에 들지만 퍼석거림도 거슬린다. 한 점 들어있던 차돌에서는 노린내도 난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첫 취재집 치고는 평가가 박하다.
차돌탕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던데, 글쎄, 차돌탕이 마포옥의 진짜 얼굴이려나? 그래도 먹고 난 후의 입안은 개운하고 깔끔하다. 좋은 재료를 쓴다는 말이 의심없이 들린다.
한 줄 평: " 규모와 홍보가 합작하여 만들어 낸 유통의 승리" |
위치: 마포구 불교방송 건너편 용강로 방향 직진 좌측, 오른쪽은 하나은행(5호선 마포역 1번 출구) 영업시간: 07:00-22:00 연중무휴 전화:02-716-6661 |
중림장
구도시와 신도시의 구별은 어느 나라에도 있다. 부다페스트에도 있고 뭄바이에도 있다. 그들의 특징은 구도시와 신도시가 각각의 색깔을 명확히 한다는 점이다. 신도시가 개발과 현대화의 화려함을 자랑할 때, 구도시는 전통과 향수를 강하게 드리운다. 구도시의 그런 면을 신도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다. 강북과 강남을 구도시와 신도시로 구분한다면 강북은 강북다운 모습일 때 아름답다. 오래된 시간의 더깨 속에서 강북은 빛이 난다.
중림장은 외관에서부터 가장 강북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뛰어놓았을 것 같은 골목 한쪽에 중림장이 있다.
실내 분위기도 소탈하고 수수하다. 서민의 밥집답다. 서비스도 호들갑스럽지 않고, 객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퍼올려 주는 거룩한 행위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격도 착하다. 보통이 6천 원이다.
김치와 깍두기가 섞여져 나온다. 시원한 맛은 다소 떨어지지만 맛있다.
이제 설렁탕을 먹어보자.
묵직해 보이는 국물, 양지와 머릿고기가 많이 들었다.
비주얼이 심상찮다. 흔히들 제대로 된 설렁탕은 입에 쩍쩍 붙는다고 하는데 그건 소의 머리뼈, 도가니, 힘줄, 사골, 내장 등에서 나오는 콜라겐 때문이다. 교원질이라고도 하는 콜라겐은 눈과 관절을 좋게하고, 피부재생을 도우며 노화방지 및 골다공증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약으로도 뛰어난 치료효능을 갖고 있어 허약함을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하기도 되기도 한다.
이 집의 설렁탕 맛은 묵직하다. 기분 좋은 꼬리함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진다. 구수한 맛이 떨어지는 것이 다소 아쉽지만 6천 원의 가격이 한우가 아닌 육우를 사용하는 결과물이었을 테니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주방
국물의 색깔이나 탕 위에 올라간 재료로 짐작컨대 국물의 헤비함은 사골이나 도가니, 힘줄 등의 부위가 아니라 머릿고기 같은 부위에서 나온 듯하다.
영업시간만 맞는다면 막차로 국밥 한 그릇 시켜놓고 소주 한 두 병 하기 딱 좋을 듯한 맛이다. 어쨌거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매우 흡족했다. 그릇을 비우고 난 후에도 입안에 소님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물론 비위가 좋은 경우에 한하겠지만…애연가라면 바로 이럴 때 담배맛도 기가 막힐 것이다.
한 줄 평: " 나이 드신 분이 특히 좋아하시겠네. 소주 반주와 함께. 단, 비위 약한 분이라면 갸우뚱." |
위치: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서부역 방면으로 조금 가다가 골목길 안에 있음(2호선 충정로역 4번 출구) 영업시간: 08:30-23:00 연중무휴 전화:02-392-7743 |
이남장
이남장은 3,4년 전까지만 해도 장안의 설렁탕집을 논할 때면 늘 수위권(이라 쓰고 최고라고 읽는다)에 꼽혔었고 본인도 그리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영업을 접고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계속 국물을 끓여 날랐다는 몹시 아름다운 일화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 고발류의 프로에 청결상태 불량이 고발되면서 영업정지를 당하고 소고기 원산지 표시 위반 등이 걸린 적이 있는 집이다. 그 일 이후 이남장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선 요 근래 꽤나 부진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날 취재를 위해 이남장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경. 10시가 영업 마감시간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부진이란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손님이 많다.
음식점과 음식점을 소개, 내지는 평가하려는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 따위를 거창하게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밥상에 앉아 주방을 바라보니 파란 색의, 필경 플라스틱 국자로 여겨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두 번이나 그런 일로 다수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던 이남장이 설마 그 플라스틱 바가지로 여겨지는 물건으로 뜨거운 국물을 휘휘 젓거나 손님 밥그릇에 뜨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이남장은 어찌되었건 한국의 설렁탕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이 찬란한 훈장들
이 집의 설렁탕은 7천 원이다. 일단 가격 괜찮고. 김치와 깍두기 맛은 어떨까.
가볍고 시원스럽다. 입에 달라붙는 맛도 좋지만 국물이 무거운 고깃국의 경우는 이런 시원스러운 김치 깍두기가 입안을 개운하게 해줘서 좋다.
이제는 설렁탕.
비주얼이 꽤 좋은 편이다. 위에 올라간 수육은 비록 얇지만 넓게 썰어내 씹는 맛을 즐길 수 있게 배려했다.
경험상 설렁탕의 구수한 맛과 입에 쩍쩍 달라붙는 국물 맛을 동시에 즐기려면 한쪽을 죽일 수밖에 없다. 관건이 되는 것은 그 중 하나를 얼마나 덜 죽이느냐일 것이다. 이 집 육수는 그런 면에서 썩 뛰어나다. 뼈와 고기를 제대로 끓여냈구나 싶게 구수한 감칠맛을 내는 국물이 쩍쩍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입안을 살짝 덮어주는 묵직함을 무리 없이 전달한다.
명불허전이란 단어는 이런 경우 쓰는 것이리라. 소문난 집에 먹을 것이 근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물은 셀프. 나이 드신 고객이 많은 설렁탕집에서 저런 문구는 자꾸 눈에 거슬린다.
한 줄 평: " 균형잡힌 전통의 맛 " |
위치: 2호선 을지로 3가역 1번, 2번 출구 사잇길로 들어오면 첫 번째 좌측길로 좌회전 50미터 직진.(본점) 영업시간: 08:00-22:00 명절 제외 연중무휴 전화:02-2267-4081 |
백송
외관이 마치 전통찻집 분위기다.
백송은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신흥주자다. 이집의 간판에 걸려있는 명품이라는 단어는 백송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아주 적절하다. 서민적인 설렁탕에 붙어버린 명품이라는 수식어. 과연 어떤 설렁탕이기에 겁도 없이 명품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것일까?
외관도 그러하지만 내관도 찻집 분위기다. 설렁탕집이 이렇게 깔끔해도 되나 싶다.
지금의 자리에서 30년, 길 건너에서 20년 도합 50 여년 간 효자동 부자 동네에서 영업을 한 탓인지 서비스도 고급스럽다. 곱게 나이를 먹은 지배인 여자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홀을 관리한다. 한복을 입고 있다면 고급 한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어색하지 않다. 한마디로 몸에 밴, 백송만의 서비스가 자리를 잡은 듯하다.
가격은 숭악하다. 설렁탕 한 그릇이 역시 9천 원이다. 그 옆에 줄줄이 있는 요리 가격도 만만치않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김치가 나오기 전에 무생채가 나온다.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손이 잘 가지도 않는데, 무생채 먹고 일단 입을 개운하게 하라는 배려인가? 잘 담가진 김치와 깍두기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게 나온다. 맛도 좋다.
이제 설렁탕 등장.
맨 위의 거무튀튀한 놈은 무려 만하(지라와 그 주변 고기)다!
저 고기 삶아진 상태 좀 보라지!!
9000 원의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내용물은 비싼 값을 한다. 여태까지 설렁탕 집 중 최고의 고기이자 최다의 고기다. 양, 만화, 양지, 사태…. 이쯤 되면, 이건 설렁탕이 아니다. 양은 적지만 모둠 수육에 국물을 말아준 형상이다. 국물도 진국이다. 네 집 중 제일 깊은맛이다.
그런데 아쉬움은 남는다. 맛은 깊으나 사골이나 잡뼈에서 우러나는 구수한 맛이 약하다. 맛있는 설렁탕은 먹은 듯하지만 최고의 설렁탕을 먹은 느낌은 없다.
탕과 별도로 나오는 밥도 쌀알들이 쫀득쫀득한 것이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아무래도 이 집을 정통 설렁탕 전문으로 보기는 어렵겠다. 수육 전문집이라고 하면 맞겠다. 하기사 전문이든 말든, 맛만 있으면 장땡이긴 하다만.
한 줄 평: " 우아한 소 한 마리 집 " |
위치: 경복궁역에서 세검정길 방향 두번째 버스 정류장 앞 영업시간: 24시간 연중무휴 전화:02-736-3564 |
출처 : Tong - 윈키님의 윈키님의 맛집정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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