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남대문 닭곰탕

꿈에그린 2008. 7. 9. 16:21
 

해장, 뭘로 하시나요?


사람마다 다 다르더군요. 술 먹은 다음 날 아침엔 꼭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은 뜨끈한 국물을 찾습니다. 그래서 아예 '해장국'이라는 메뉴가 따로 생겼나봅니다. 국물도 다양해서 북어국이나 콩나물국처럼 맑고 개운한 국물을 찾는 사람, 거기에 고춧가루를 좀 풀어 매콤한 맛을 찾기도 하고, 얼큰하게 청양고추 듬뿍 넣은 선지해장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요. 정말 각양각색입니다. 조금 특이한 경우도 있는데, 한 후배녀석은 꼭 별다방에 가서 차디찬 프라푸치노를 사 먹더군요. 저는... 음식을 가려 먹는 편은 아니라 아무거나 주는대로 먹습니다. 별다방 프라푸치노 빼곤 다 괜찮습니다. 폭음하는 음주 스타일도 아니라 꼭 해장을 찾아서 챙기는 것도 아니구요. 근데 가끔이지만 술을 정말 많이 먹은 다음날엔 꼭 땡기는 것이 있는데. 뭔고 하니 바로 닭곰탕입니다. 동네마다 끓여내는 방식이나 첨가물이 조금씩 다르지만, 닭곰탕의 '전형'을 맛보려면 남대문시장에 가야합니다.

 

<양은냄비에 끓여내는 닭곰탕. 다른 곳에서는 냉면그릇이나 국그릇에 담아 내는 경우도 있지만, 남대문에선 양은냄비를 고집합니다. 뜨거운 손잡이에 델 수 있으니 조심해야합니다. 반찬은 기껏해야 배추김치, 깍두기, 통마늘과 고추장이 전부입니다. 닭껍질은 삼계탕이나 닭도리탕처럼 흐물거리지 않고 오히려 꼬득꼬득해서 씹히는 맛이 있습니다. 좋아하게 되면 다음부턴 껍질만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

 

 

 

남대문 닭곰탕을 처음 먹었던 기억은 10년전 학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제마감으로 한참 바쁜 11월 학기말. 짙은 회색 구름이 낮게 깔리고 겨울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을씨년스런 저녁입니다. 하나 남은 마지막 과제물 작업하는데, 이런! 재료가 딱 떨어졌네요. 급하게 재료를 사러 남대문 화방에 갔는데 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대략 난감이죠. 택시타고 같이 간 친구가 조교에게 전화를 합니다. 혹시 학과사무실에 재료가 남아있는지 알아보려는 모양입니다. 녀석 얼굴빛이 갑자기 밝아지는데, 교수님이 내일 못 나오시니 다음주까지 제출하면 된다는겁니다. ^^ 분위기는 갑자기 룰루랄라 버전으로...

 

갑자기 쓰나미처럼 허기가 밀려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컵라면 하나 먹은게 전부. 일단 뭐라도 먹고 보자며 남대문시장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좁디좁은 골목안에 빨간 페인트로 대충 휘갈겨 쓴 간판들. 몇십년전통에 빛나는... 우리가 진짜 원조... 어디어디방송에 나왔네... 라는 미사여구도 없었습니다. 그냥 무슨집. 누구네. 하는 식의 간결하다 못해 무성의하게까지 느껴지는 간판입니다. 일단 쓰러지기 전에 한번 들어가보자. 여기 뭐가 맛있나 물어보니 주인인듯 보이는 할머니가 "닭곰탕 잡수소! 여 닭곰탕 두개~" 속전속결로 나오는 반찬. 김치, 깍두기, 양념간장, 통마늘과 고추장이 전부입니다. 곧 이어 나오는 양은냄비. '엥? 이게 머냐?' 머얼건 국물에 둥둥 떠있는 기름. 그 안에 닭다리와 대충 찢어넣은 닭고기조각들, 게다가 잔뜩 들어간 닭껍질. 비호감입니다. 차라리 요 앞에 갈치조림하는 집에 갈걸 하는 후회까지. 친구녀석도 표정이 그리 좋진 않더군요. 그래도 어떡하냐. 시켜놓은거니 일단 먹어나 보자. 한숟갈 뜨는데 '어? 이거 봐라. 제법 맛난걸!' 퍼나르는 숟가락에 속도가 붙는데 갑자기 친구가 제동을 겁니다. "잠깐! 할머니! 쏘주 하나 주세요!" 그날 친구와 저는 닭곰탕을 한그릇씩 먹어치우고, 하나를 더 시켜서 먹었습니다. 소주는 4병 넘게 마셨죠. 아마.(1인당 두 병 넘기면 기억이... -_-)

 


 

 

그땐 한 그릇에 3천5백원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올랐네요. 요 며칠 전에 갔더니 6천원 합니다. 특은 7천원. 깨끗하게 내부수리를 한 집도 많고 간판도 새로 달고 어느 방송에 나왔다는 스티커를 붙인 집도 있습니다. 뭐... 좋은 점도 있겠지만 10년 전에 느꼈던 세월의 그림자가 없어진 것은 좀 아쉽단 얘기죠. ^^ <강원집>과 <영남집>이 가장 장사가 잘되는 집입니다. 사진은 <강원집>의 닭곰탕입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한다지만, 익혀먹는 닭고기는 괜찮다 하니. 게다가 꼬득꼬득한 닭껍질의 중독성은 쉽게 떨치기 힘들것 같습니다. 느끼해 보이지만 생각보단 담백한 국물맛이 아주 따봉입니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것만 먹겠다고 고집하시는 분들이라도 과감히 고정관념을 버리고 도전해보시길...(사실 제 주변의 여성들은 먹어보지도 않고 가게 분위기만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만... -_-)

 

 

 

<위치정보를 알려달라는 분들이 있으셔서 지도를 찾아 올립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 닭곰탕 골목입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시려 해도 워낙 미로같은 골목이라 헤메실까 걱정되는데요. 혹시 못찾으시겠거든 근처에 장사하시는 분 아무나 붙잡고 갈치조림이랑 닭곰탕 파는 골목이 어디냐고 물어보시면 자세히 알려주실겁니다. 남대문 상인들이 퉁명스러울것 같지만 생각보단 친절한 분들이 많더라구요. ^^>
출처 : 한겨레신문 블로그.세렝게티의 사자들은... 

[출처] 남대문 닭곰탕|작성자 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