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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남편 깨어나게 한 성정희씨의 감동 사연

꿈에그린 2010. 7. 12. 16:13

4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남편 깨어나게 한 성정희씨의 감동 사연



“남편이 발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가 되었죠”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4년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기적적으로 깨어나게 한 아내가 있다.

끔찍했던 지난 시간의 고통은 남편이 눈을 뜨는 순간 훨훨 날아가 버렸다는 성정희씨가 그 주인공.

그녀는 남편이 힘겹게 발가락을 움직이고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기적이에요. 기적! 당신 정말 대단해요”


부평에 있는 한 병원의 햇살 잘 드는 창가 옆 침상에 정승호(49세)씨가 누워 있다. 코에는 음식물을 넣기 위한 고무관이 연결돼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 손가락 발가락을 조금 움직이는 것, 눈을 깜빡이는 것뿐이다.

“여보 왜 울어? 사진 찍는 거 싫어서 그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자 일행을 보자마자 눈에 한가득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정승호씨의 마음을 읽지 못해 기자는 당황스러웠다.

“여보! 싫거나 슬퍼서 우는 거 아니지? 괜찮으면 윙크해봐.”

아내 성정희(36세)씨의 말에 정씨는 간신히 한쪽 눈을 깜빡인다.

“이이가 감정이 북받쳐 이러는 거예요. 인터뷰해도 되겠느냐고 제가 물어봤더니 처음엔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신 모습을 보고 다른 환자들이나 가족들이 힘을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그러면 인터뷰를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어쩌다가 꼼짝도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됐는지, 정승호씨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아직 버거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했다. 간절한 그 마음이 눈물로 쏟아져 나온 것임을 기자는 뒤늦게 알았다.

“말은 못해도 눈으로 의사표현을 다 해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할까, 생각을 해서 제가 어떤 말이든 해요. 그러면 맞으면 맞다, 싫으면 싫다 눈으로 표시를 하죠.”

이심전심은 곧 이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성정희씨는 남편의 눈빛만 보고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 잘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정씨는 아직 이 기적 같은 일이, 아니 어느 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니 4년이나 흘렀고 자신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0월 1일에 의식을 찾았어요. 아이들 아침 챙겨 학교 보내고 났더니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빨리 와보라고요. 달려와서 이 사람 손을 잡았는데 글쎄 힘을 주는 거예요. 발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하니 어렵게 움직였어요. 그리고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눈물을 주르르 쏟는 거예요. 제 말을 알아듣는 거였어요. 드디어 의식이 돌아온 거죠.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었던 지난 4년을 빼고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둘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죠. 전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이 사람이 스스로 깨어난 거예요. 장해요. 우리 남편 너무 대단해요.”

성정희씨는 가족들에게도 빨리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를 들었다. 아이들을 부르려고 했는데, 순간 남편이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너무나 보고 싶지만 이런 모습으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수시로 병원에 찾아와 아빠 모습을 봐왔어요. 하지만 그건 남편이 의식이 없었을 때잖아요. 몸은 움직이지 못해도 정신은 멀쩡하게 돌아왔으니 자신의 모습을 본 아이들이 얼마나 속상할지, 충격을 받을지 아빠로서 걱정이 됐던 거예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아빠가 깨어난 것을 알려줬어요. 부랴부랴 달려왔더라고요. 아빠가 처음에 쓰러져 누웠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다고 했어요.”

두 아들을 본 남편은 많이 놀라워했다. 당연한 일이다. 승호씨의 기억 속에 초등학교 6학년이던 큰아이는 청년 티가 나는 고등학생이 됐고 작은아이도 중학생이 됐으니까 말이다. 모든 가족, 친척, 지인들도 병원을 찾아와 함께 기쁨을 나눴다. 이 같은 기적에 투병 중인 주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반가워했고 담당 의사도 “난 한 일 별로 없는데, 스스로 기적을 일으킨 거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보자”며 응원해줬다. 성정희씨는 울면서, 웃으면서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잔치를 했어요. 너무 기뻐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하고 싶더라고요. 식물인간이 된 환자 가족들의 모임에 한 달에 한 번씩 나가고 있었는데 모두들 우리 애 아빠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있어요. 많이 지쳐 있던 그들이 다시 용기를 얻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죠.”

그녀는 아직도 남편 덕분에 병실 안의 분위기가 들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오직 시아버지만이 그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했단다.

“아버님은 남편이 쓰러진 후 9개월 만에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사실 이이가 쓰러졌을 때 아버님도 건강이 상당히 안 좋으신 상태였어요. 막내아들이 이렇게 된 것도 모른 채 눈을 감으셨죠. 그리고 남편은 아버님 돌아가신 걸 아직 몰라요. 충격받을까봐 차마 이야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나중에 이 사람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말해줘야 할 텐데 입이 안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에요.”

올 초 정승호씨는 큰 위기를 넘겼다. 갑자기 폐렴 증세가 나타나더니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담당 의사는 “이제는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통보했다. 성정희씨도 “내가 붙잡고 있어서 이토록 힘들게 지금까지 왔나봐. 여보!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편하게 눈감게 해줄걸~”이라며 마음을 정리하려 애를 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승호씨의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다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7개월이 지나 이렇게 깨어난 것이다.

기자와 성정희씨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승호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아이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생각에 발걸음을 서둘렀던 4년 전의 퇴근길을, 자신이 의식을 놓고 있는 사이에 혼자 마음고생, 몸 고생을 했을 아내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남편이 발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가 되었죠”



기대하다 좌절하다 결국 마음을 비웠다


2001년 12월 28일. 대기업에서 IT업무를 담당했던 정승호씨는 여느 때처럼 오후 8시경 퇴근했다. 그리고 회사를 나서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어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몸은 녹초가 된 상태였다.

“여보, 나 지금 들어가는 중이야. 곧 도착할 거야.”

남편의 전화에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던 성정희씨. 그런데 올 시간이 지나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걱정하고 있던 차에 집 근처에 사는 작은 시숙이 연락을 해왔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남편이 병원에 있다는 것이다.

“집 앞까지 거의 다 왔는데 갑자기 어지러워 작은 시아주버님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급하게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대요. 많이 놀랐지만 ‘별일 아닐 거야’라며 병원으로 달려갔죠. 병원에서는 뇌경색이라며 혈전용해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했어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혈전용해제를 투여하고 조금 지나니 오른쪽 마비 증상이 일어났고 1시간쯤 지난 후에 하품을 하더니 갑자기 혈압이 260까지 올라가더라고요. 그 후로 계속 사경을 해매기 시작했죠. 뇌혈관이 터졌다고 했어요. 12시간 만에 의사 선생님이 불러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길어야 2~3일 정도 버틸 수 있다고요.”

기가 막혔다. 평소 헬스클럽에서 꾸준히 운동을 했고 등산도 좋아했던 건강한 남편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의사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하니….

“그 말을 어떻게 믿겠어요. 그냥 저러다 깨어나겠지, 막연하게 그런 생각만 들었어요. 주말에 아이들과 등산 가겠다며 등산화도 새로 사놓았었죠. 다행히 고비는 넘겼는데, 의식을 찾지는 못했어요.”

그 후 한 달간을 중환자실에 있었다. 처음에는 겁이 나고 무서워 중환자실 문 앞에만 가면 다리에 힘이 빠졌던 성씨는 남편이 하루빨리 일어나 그곳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쩌다 남편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으면 이제 깨어나는구나 싶어 의사에게 달려갔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동물적인 반응에 불과하다는 소리였죠. 그 말에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남편이 쓰러진 후 6개월간 그녀는 매일 아침 절에 가서 108배를 올렸다. 산재 환자인 정승호씨의 경우 약 6개월 간격으로 병원을 옮겨 다녀야 했다. 산재 환자가 아닌 일반 환자의 경우에는 3개월 간격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녀야 한다. 현행 의료보험법상 그래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단다. 의식도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 환자와 가족들은 이것이 커다란 고통이라고 호소한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남편 병간호에 저녁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학 과외를 하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따로 절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 부처님이더군요. 저는 이 사람을 믿고, 이 사람에게 의지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 다음부터는 이이에게 108배를 올리는 심정으로 병간호를 했죠. 저는 무슨 수라도 써보고 싶었어요. 유명한 한방병원에 가서 침도 맞혀보고 싶고 약도 써보고 싶었어요.

산재 환자이기 때문에 치료비는 지원받지만 별도의 한방 치료는 100% 자비 부담이에요.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뭐든 다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해봐야 소용없다며 받아주지 않는 곳도 많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력에 좋다는 음식을 끊임없이 해 나르는 것밖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전복이 좋다고 해서 아마 수백만원어치는 먹였을 거예요. 되돌아보니 전 정말 이 사람에게 해준 게 없네요. 워낙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자기 스스로 깨어난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기적을 꿈꾼다


남편이 의식을 잃은 후 1년간은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고, 또 1년간은 왜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처지를 원망하며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러다가 결국 정희씨도 쓰러지고 만다. 병원에서는 갑자기 불안이 극도로 심해지며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두근대는 증상을 보이는 ‘공황장애’라고 했다. 너무 신경을 쓴 탓이다.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안정을 취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어떻게 누워 있을 수만 있었겠는가?

“괜찮으니 당장 퇴원시켜달라고 의사를 졸랐죠.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당신이 없으면 남편도 없고 애들도 없어요. 우선 자기 몸부터 추슬러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설득하더라고요. 그 말이 맞다 싶었어요. 그리고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갖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나니 남편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내 행복이지 싶더라고요. 또 어려운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는 두 아들이 있으니 힘을 낼 수밖에 없었죠.”

엄마를 즐겁게 해주려고 집에서 항상 밝게 웃었던 아이들이다. 다른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의 두 아들 공부를 봐주지는 못했다. 유독 아빠 무릎에 앉는 걸 좋아했던 작은아들이 어느 날 아빠 대신 형 무릎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모습에 그녀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정승호씨의 몸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모두들 그가 다시 한 번 기적을 만들어내길 바라고 있는 중이다. 우선은 그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우울증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대부분 그와 같은 환자들이 깨어나면서 우울증을 동반한다고 한다. 정승호씨도 깨어난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매우 침울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재활치료에 강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깨어날 가능성은 0.0001%도 안 됐을 거예요. 그래서 기적이라고 하죠. 제 생각에는 남편의 강한 의지력 때문에 깨어난 것 같아요. 워낙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남편 친구이기도 한 제 친오빠는 이 사람 의지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어요. 옛날에는 야학이라는 것이 있었잖아요. 두 사람이 대학 다닐 때 거기서 함께 선생님을 했었대요. 우리는 오빠 소개로 만나 결혼했어요.”

정승호씨는 요즘 전기치료와 고정대에 몸을 맡기고 서 있는 훈련을 하고 있다. 많이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훈련이다.

“힘들어해서 그만 하겠느냐고 물으면 더 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조금씩이지만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가 늘어나고 있어요. 떠먹는 요구르트를 가지고 입으로 음식을 먹는 연습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괜찮을 것 같아 묽은 미음도 먹여보려 했는데 아직 그것까지는 넘기지 못하더라고요.”

성정희씨의 소망은 앞으로 3년 후, 결혼 20주년 되는 날에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서라도 둘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좌절하고 힘들어할 이들을 위해 자신의 불편한 몸을 전부 내어 보인 용기 있는 정승호씨,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힘이 됐다는 착하고 밝은 성정희씨. 부디 이 부부가 전해준 가슴 벅찬 이야기에 힘을 얻어 제2, 제3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취재 이효순·사진 조세일

출처 : <우먼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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