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았고 더 기쁜 일도 얼마든지 겪겠지만,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일은 대학 합격 소식이었을 것이다.
1995년 12월 31일 밤, 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루프스라는 희귀병으로 힘겹게 학교를 다니다 결국 검정고시를 치렀고,
이튼날 아침이면 대학 입학고사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된 병은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선생님 설명 듣는 시간보다 양호실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학교 나가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에 당당히 서 있는 미래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더욱 채찍 질했다.
수능시험 날 아침, 머릿속에 전날 외워 두었던 요점들을 떠올리느라 미처 앞을 살피지 못하고 걷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하지만 고통에 찬 신음을 듣고 주위 학생들이 시험 감독관을 부르러 간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감독관이 오면 병원에 실려 갈 테고, 그동안 공부한 시간들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게 뻔했다. 나는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시험을 보았다.
내가 원하던 학과는 내 지병을 연구하기 위한 유전공학과였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왔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심하게 반대하셨다. 집 근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던 내가 혼자 먼 곳에서 어떻게 공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십 년 병치레에 는것은 고집뿐, 나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
새벽 6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합격 여부를 알려 준다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험번호를 누르는 손이 떨려 왔다. 연결 신호가 울린 뒤 들려오는 안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정보미 님, 합격하셨습니다." "우와! 합격이다. 합격이래요!" 나는 다들 잠든 새벽이라는 것도 잊고 소리치며 마루로 달려나갔다. 그러다 마루에 놓인 할머니 요강에 걸려 넘어졌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집 안을 울렸고 나는 온몸이 오줌 범벅이 되었지만 뛸듯이 기쁜 마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불가능' 하다던 일을 단지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덤볐는데 결국 내가 이긴 것이다.
그렇게 요강까지 뒤집어쓴 합격이었지만, 대학입학 후 몸에 무리가 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난 지금도 삶이 힘들거나 우울할 때면 요강 뒤집어썼던 그날 새벽을 떠올린다. 얼마나 좋았던가! 얼마나 벅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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