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 이끌며 농사 생계 챙겨 친정아버지 병들자 모셔와
산도 낯설고 물도 낯선 이국 땅에 시집와 나이 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3년 전부터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남편을
대신해 갖은농사를 지어가며 세딸을 모범생으로 키워내고
미야자키 히사미는 먼저 한국으로 시집간 친구의 친구가
1년이 넘도록 몇십통의 편지가 대한해협을 넘나들었고,
꿈에 그리던 얼굴을 마주하려 한국과 일본을 오가기도 했다.
그렇게 미야자키 히사미(43)씨와 이진기(46)씨는
일본 자동차회사에서 사무를 보던 일본 여성에게 강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낯선 땅에서 시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과 믿음직한
남편의 사랑이 없었다면 견딜 수 없는 세월이었다.
은별(9), 은솔(8), 은비(6) 딸 셋을 낳고 행복하게 살던
미야자키씨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 건 2004년.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갑자기 앓아누웠다.
복통과 고열, 구토에 시달린 남편은 결국 서울아산병원까지
열은 40도까지 치솟았고, 한달 넘게 의식을 잃은 남편은
늙으신 시부모님과 어린 세 딸, 시력·청력을 잃은
남편이 일구던 느타리버섯 농장은 그가 감당할수
남편의 1급 장애인 생활보조금 등 한달에 100만원
대가족을 이끌어야 할 여성 가장의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아버지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가려니, 못 보고 못 듣는 남편은
서울 농협중앙회 본사에서 만난 미야자키씨는 수줍게웃었다.
지역 농협의 추천으로 그는 제12회 농협효행상
지난해 300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늘어난 상금은,
“남편의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글을 써서 대화해요.
얼굴에 10년 전 새색시의 부끄러운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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