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삼선교 한강(칼국수)

꿈에그린 2008. 12. 5. 16:47

사시사철 땡기는 것은 국에 밥.그리고 생선.
추워지면 땡기는 것은 역시 면.
냉면에 가락국수에...칼국수.

가장 즐겨 먹던 것은 멸치국물을 두텁게 끓여서 거칠게 썰어넣은 손칼국수였지만,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새로이 입을 붙인 것은 얇고 하늘하늘한 면을 사골이나 양지머리 육수에 끓여낸 그런 국수였다.

멸치육수의 다소 짭짤한 맛에 구수함이 얹혀 있는 맛과는 또다른 즐거움.고요한 박력이 있는 보얀 고깃국물에 따라오는 부드러운 목넘김.그 촉감이 좋다.

최근 주변에는 바지락칼국수가 대세지만,역시 칼국수의 생명은 면과 국물이고,또한 그 조화라 생각한다.
매일같이 오래 국물을 내고,일일이 손으로 밀고,균일하게 썰어내는 과정에서 들이는 정성.
극히 단순한 조리법 때문에,들인 정성이 맛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칼국수는 참 정직한 음식이지 싶다.
그래서 좋다.

혜화로터리에서 삼선교-한성대입구역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좌우로는 장안에도 소문난 국수집이 널리고 널렸다.
모처에서 붙인 이름은 `마의 칼국수 삼각지`.
대개 공통점은 사골국물을 낸다는 점이랄까.덕분에 수육이 꼭 붙어있고.
보고 있으면 오묘한 감정에 휩싸이는 옛 정치인들의 휘호가 걸린 곳도 적지 않다.
한때 일 때문에 그곳을 넘어다닐 일이 많던 시절이 있었다.
오며가며 밥먹어야지 핑계대고,
떡본김에 장사지낸답시고 이런저런 집을 다녀본 끝에 한군데를 낙점하고는 줄곧 칼국수가 땡기면 찾는 곳이 있다.






`한강`.
어쩌다 보니 나머진 다 흔들려서 닫았을 때 찍은 것 뿐이더라.
유명한 집이 많음에도 조용한 이 골목에서,다시 유달리 조용한 가게.
저렇게 간판이 쪼그매서,있는 듯 없는 듯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집.
이 동네만큼이나 해묵은 부부가 그저 단골 위주로 느긋하게 장사를 한다.
음식도 가게만큼이나 조용하되,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다.




紅顔의 영감님(아무리 봐도 해마다 반로환동하는 기미가 있다!!!)과 살짝 구부정하신 할머님.
부엌에서 쩔그덕쩔그덕 소리가 난다.
별거 안하는 듯이,영감님은 음식을 나르고 옆에서 돕는다.
멀찍이서 본 가시버시 뒷모습,하 참으로 고웁다.




공주에서 가져온 고추로 빻은 고춧가루에
새우부터 사서 직접 담은 새우젓으로,
그렇게 매해 250포기를 담근다는,그 김치.
영감님이 직접 한단다.허리가 아프단다.




개인적으로 이집 김치맛은 장안에서도 탑클래스.
한입 씹으면,아그작 하고 부서지는 것이 차고 청명하다.




깍두기와,슬쩍 해묵은 김치를 같이 낸다.
과하지 않은 시큼함이 어찌나 산뜻한지.
철에 따라,오래된 묵은지를 씻어다 볶은 것을 내줄 때가 있다.
갓지은 밥에 얹어먹으면 극락이 보인다.




야채전 한접시는 다른 집에서 찾기 힘든 서브메뉴.
얇은데다 든 재료도 쪽파랑 깻잎,오징어 쬐금뿐.그런데도 인기가 좋다.




마치 튀김같은,완벽에 가까운 굽기.
바삭함이 보인다.




전하면 역시 생선전.
명절에 하는 전 중에선 어육소시지하고 생선전이 최고♡.
그럼에도 명절에는 전이 상에 오르면 그닥 땡기질 않는다.
한참 간보고 맛보고 기름내를 맡는 새에 어느새 질려버린 자신을 발견하기 떄문이다.
역시 전은 남이 해주는 걸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전을 부친 자는 전맛을 잊게 되나니 아아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칼국수와 수제비를 섞어 한그릇.통칭 칼제비.메뉴판에는 없지만,섞어달라 하면 된다.
느타리와 호박을 섞은 고명.담은 모양새가 음전하다.
양지로 낸 보얀 국물은 흡사 우물물 같아,맑으면서 힘이 있다.
찐득한 사골처럼 과하지 않고 중용을 잘 지킨다.




국수발이 가늘고 곱기로도 아마 장안 탑클래스일듯.
보이는대로 젓가락보다 가늘고 얇은 면발이 하늘하늘.
반죽을 곱게 구석구석 정성들여 밀어서 실마냥 꼼꼼하게 썰은 게다.
씹을 새나 있나.그냥 호로록 넘어간다.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참으로 양반스러운.
이집 국수맛은 색으로 치면 물들지 않은 하얀색이다.고아한 정적.




수제비만 따로 한그릇을 청해 본다.
국수와 매한가지 속삭임같이 고요하다.




수제비를 얇고 고르게 뜨는 것은 시간+기술+정성 3박자가 맞아야 한다.힘든 일이다.
나무하던 어느 관음증 양반이 감춰놓은 날개옷이 아마 이러했을까.
매해 아주 조금씩 두꺼워지는 것 같아,그것이 너무나 쓰라리다.




다대기도 괜찮다.
그러나,저 하얀 맛을 더럽히는 것 같아 언제나 조심스럽다.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로 나가,안동할매청국장집 옆골목으로 들어오면 된다.
이후는 나폴레옹제과점에서 빵이라도,아니면 바로 길건너의 찻집에서 차 한잔.
그것도 아니면,성북동 길을 따라 느긋이 걷는 것도 참 좋다.

좋아하는 동네에서 좋아하는 국수.
생각나면 문득.조용히 찾아가서 고요한 행복을 즐긴다.

한강이란 상호는 왜일까.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한강 둘레로 사는 사람들은 시끄럽고 요란한데,한강은 그저 묵묵히 西로 흐른다.
그런 강을 닮은 집이다.오래 가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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