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혜화동 손칼국수

꿈에그린 2008. 6. 24. 10:52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졸다 깨다 하던 나른한 일요일 점심 , 커다란 함지박 꺼내서 밀가루에 물 붓고 곱게
반죽되도록 치대다가 멸치다시 국물이 끓으면 된장 살짝 풀고 수저로 늘어지듯하게 하나씩 얇게 띄어 넣고
애호박이며 감자에 파를 채치듯이 썰어 넣어 부르르 끓여내던 쫄깃쫄깃한 맛의 별미 수제비. 또 송송 칼로
썰고 맑게 낸 양지 고기 육수에 끓여 호박나물 얹어내는 제물칼국수. 칼로 썰어낸 국수라 칼국수라고 하나요.
다시나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으로 사철내내 입을 즐겁게 해주는 별미 음식들이지요.
지금도 비슷한 곳에 있긴 하지만 70년 후반까지 동인천 용동이라는 곳,언덕위 골목길 안에 초가집이라는
칼국수집이 있었는데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흙바닥위에 커다란 국수 밀판이 있고 그 위엔 항상 넓게
밀어낸 밀가루 반죽이 있어 자리 날 때까지 심심풀이로 자기 국수 썬다고 하다가 주인 할머니에게 혼나곤 하던,
서울까지 소문 난 집이었지요. 국수던 수제비던 반죽을 잘해야 제맛이 나는 거라 반죽의 되기나 치대는 정도가
모두 손 반죽이 아니면 제대로 맛 내기 어려운터라 사실 손칼국수가 특별한게 아니라 당연한 건데.
요즘이야 그 많은 손님에게 빨리 내려면 천상 기계반죽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테지요.
사실 초가집이라는 옥호도 집이 초가집이라 생긴 것이지 원래는 간판도 없던 곳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 입학하기 전 겨울에 데이트 겸 인천으로 놀러갔다가 (그 시절엔 고속버스타고 짧게 여행기분 낸다고
인천으로 가는게 일반적인 데이트코스 였답니다) 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렸던 적이 있었는데 미닫이문 안에
경기식 한옥스타일의 일자집이 있고 밀판이 놓여진 마당이며 마루 방 곳곳에 사람이 많을 때는 여기저기 상이
놓여져 있었는데 마침 우리 뿐이라 메주 걸어 놓은 시골외가집 건너방 같은 같은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 상을
받게 되었지요. 주인 할머니 상 들고 오셔서 마치 손자 점심 챙겨주시듯 하며 총각도 색시도 모두 너무 예쁘게
생겼다는 둥 참견을 하시며 동그란 양은 상위에 놓여진 김치 그릇을 몇번이고 고쳐 놓으셨었지요.
따뜻한 온돌에 발 녹이면서 칼칼한 국물부터 마시고나서 후루룩후루룩 국수를 먹다보면 어느새 콧잔등엔
땀방울이 송글송글해지며 뱃속까지 훈훈해지고 할머니의 구수한 참견소리에 마치 시골 고향집에 갔다온 듯
하다면서 좋아했던 그 데이트 상대나, 그때의 칼국수의 맛도 이젠 지나 가버린 희미한 기억속의 그림자.

칼국수는 국물의 다시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면발도 달라져야 하는데 바지락이나 멸치 다시 같은 맑은
국물에는 쫄깃하게 씹혀지는 면발이, 사골 육수의 진한 국물에는 부드럽게 씹혀지는 면발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사람마다 좋아하는 기호에 따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칼국수집도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먹깨비의 맛집 100 選에 꼽으려는 칼국수 집은 고기 육수로 끓여내는 면발이 부드러운 타입으로 내는
집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워낙 맛있게 내는 집들이 많아서 한 집만을 꼽자니 이집 저집이 다
걸리는군요. 그래도 그 중에서 예전 (먹깨비가 기억하는 칼국수 집의 원형같은)초가집처럼 가정집 분위기로
늘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혜화동 손칼국수집"을 맛집 100 選의 칼국수 잘하는 집으로 올려봅니다.
혜화동,성북동 주변에는 유난히 오래된 국수집들이 많습니다.

혜화칼국수,다미(수제비),국시집,성북동 쪽으로도 맛있는 국시집이 몇 개 더 있지요. 대부분 대로변에 위치
했거나 찾기 쉬운 곳에 있는데 유독 혜화동 손칼국수집은 골목안에 숨어 있는 듯 해서 오다가다 우연히 들릴
수는 없으니 아는 사람들 끼리만 아껴두고 찾는 그런 집이 된 것 같습니다. 요즘은 내공이 깊은 식탐가들의
블로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바람에 좀 알려진 듯한 데도 위치상 아직은 심하게 붐비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혜화동 로타리에서 경신학교 쪽으로 들어서는 길목의 SK주유소를 지나 약 50미터 올라오다 혜화약국을 끼고
오른 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로 꺽어지면 아주 작게 붙어 있는 간판이 눈에 뜨입니다.
눈여겨 잘 봐야 할 정도이네요. (765-7947) 

CIMG4340(2076).jpg 

사실 혜화동 손칼국수 집은 국수보다 저녁 무렵에 전을 안주로 편안하게 술 한 잔하기 위해 찾은 적이 더
많은 곳입니다. 주문을 하면 먼저 겉절이와 무채 양념장을 내어 줍니다. 이 맛은 비교적 평범한 편입니다.
(김치 맛으로만 따지면 연희칼국수의 겉절이와 백김치가 훨씬 훌륭하답니다).

CIMG4343(2076).jpg 

무채는 담백한 맛인데 전 먹고 한 젓가락 먹어도 좋고 국수에 올려 먹어도 좋은 정도 입니다. 그래서 술 마실
때는 푸짐하게 내 놓아도 금새 바닥이 난답니다. 
이 집에서는 발렌타인 30년을 마실 수 있다는 헛소문이 있습니다. 반은 진짜이던데요, 인삼주를 시키면
발렌타인 30년의 병에 담아 내 온답니다.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기분 한 번 내 보는 거지요. 아직도 그럴라나?
수육도 맛있는 고기를 사용해서 안주로 많이 찾지만  이 집에서는 전을 꼭 먹어줘야하지요. 겨울엔 굴전이
평소엔 간전과 고추전이 단골 메뉴인데 이 집의 전은 주문하면 그때 부쳐 주기 때문에 원 재료의 풍미가
그대로 입안 가득히 퍼질 정도로  맛이 일품이랍니다.

CIMG4344(2076).jpg 

고추전엔 고기소가 알차게 들어 있어서 아삭한 고추와 함께 씹는 맛이 그만이지요. 인심이 좋은 할머니가
주방에 계실 때는 간전과 섞어서 반반씩 주문할 수도 있었는데 요즘은 소심해져서 그리 뻔뻔해지질 못 하네요.
양념장에 있는 파나 고추 건데기를 간전에 올려 먹으면 그 맛도 괜찮은데.
혜화동이나 성북동의 국시집이 대개 그렇 듯 사태나 양지육수를 쓰는 것 같습니다. 연희 칼국수가 설렁탕처럼

진한 국물이라면 이 집은 맑은 곰탕 국물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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