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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보리밭
꿈에그린
2010. 7. 12. 15:57
어머니와 보리밭
알싸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때가 되면 하얀 수건 머리에 쓰시고 저녁 늦도록 보리밭을 메러 다니시던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쯤의 봄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니 집은 언제나처럼 텅 비어있고 삐거덕거리던 헌 양철대문 만이 바람에 날리며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보리밭을 메려가신 모양이었습니다. 난 어머니께서 돌아오시기 전 저녁밥이라도 지어 놓으려고 얼른 교복을 벗어 갈아입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사구에 보리쌀을 내어 문질러 씻어선 무쇠솥에 밥을 앉혀 지어놓고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서툰 나물도 묻혀서 상에 차려놓고 엄마가 밭에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땅거미가 지는데도 어머니께선 밭에서 돌아오시지를 않아 골목을 내다보니 쌀쌀한 봄바람만 나뒹굴고 기다리던 어머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늘도 보리밭을 메시느라 어머니는 점심을 거르셨을텐데 여지껏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싶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점심 잡수려고 집에 오는 동안에 한 골이라도 보리밭을 더 메시려고 어머니는 그렇게 봄날 내 점심도 거르시고 보리밭을 메러 다니셨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난 어머니가 오실 길을 따라 신작로로 나가 보았더니 그 때사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마치 힘없는 어떤 물체가 흔들거리듯, 호미자루 털레털레 한 손에 드시고 머리엔 하얀 수건 쓰신 어머니의 모습이 비쳐왔습니다. 난 얼른 뛰어가 "엄마 이렇게 늦도록 보리밭을 메신다고, 좀 일찍 들어오시지 ..."하며 어머니의 호미자루를 받아들며 보니 엄마의 얼굴은 온통 하얀 흙먼지가 분처럼 덮혀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보리밭을 메시느라 어머니의 얼굴에 묻어있던 그 뿌연 분가루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벼운 호미자루 하나 받아주며 마중나온 딸이 고마우신지 그저 나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기만 하셨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그 저녁 어머니와 난 정답게 얘기 나누며 걸어와 내가 지어놓았던 이불 속에 파묻어 두었던 저녁밥을 늦은 저녁 불빛아래 어머니와 마주보며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도 딸이라고 너가 하나 있으니 이렇게 저녁밥이라도 지으놓으니 얼마나 좋노" 어머니는 그렇게 어린딸이 이불속에 파묻어 두었다 드리는 따스한저녁밥을 잡수시며 당신의 허기진 배 뿐만 아니라 당신의 마음까지 배가 불러다며 어린 딸을 칭찬해 주시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세월이 이만큼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에서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이렇게 봄만 되면 아련한 싹처럼 돋아납니다. 그 보리밭 한골 더 메시고 곡식 열매 하나 더 맺어 자식입에 넣으시려고 그렇게 점심도 거르시며 보리밭을 메셨던 내 어머니! 그 생명줄같은 보리농사 한톨이라도 더 지으시려고 당신의 몸 휘어짐도 모르시고 그렇게 한평생 흙 속에서 사시다 어느 날 새털처럼 가벼워지신 몸으로 저 하늘나라로 날아가신 내 어머니! 하나밖에 없는 딸 못사는 게 마음 아파 친정 갔다 올 때면 다른 자식들에게 받은 돈 꼬게꼬게 주머니에 접어놓으셨다가 딸 주머니에 푹 집어 넣어주시며 잘 가라고 모퉁이 골목길 다 돌아설 때까지 대문에서 손 흔들며 서 계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저 봄바람 타고 자꾸만 자꾸만 이 딸의 가슴으로 밀려옵니다 세월이 가면 좀은 잊혀지련만 세월이 가고가도 어머님의 그 모습은 더 단단한 못처럼 이 딸의 가슴 안으로 자꾸만 깊이 파고드네요. 한 평생 그렇게 모진 고생의 끄나풀만 쥐고 사시다가 이젠 그 힘든 보릿고갯 넘어실 일도 없는 하늘 나라에서 어머니! 이제는 봄이 되어도 그렇게 점심도 거르지 마시고 그 흙묻은 호미자루도 다 놓아두시고 편안히 편안히만 쉬고 계세요. 한결 꿈결같이 어머니와 같이 했던 지난날들이 그리워 이렇게 이 못난 딸이 어머니 그리워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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