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김종래(金鐘來) 선생의만화 ‘엄마 찾아 삼만리’

꿈에그린 2008. 10. 28. 15:32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한 소년의 애틋한 만화 사모곡에 온 국민이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대중매체라고 해야 신문과 진공관 라디오가 고작이던 시절, 그나마 ‘부자’소리를 들었던 일부 계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문화 혜택이었다. 그 참에 누구나 돌려가며 읽어볼 수 있었던 만화는그야말로 진정한 ‘대중 오락’이었다.
1959년 발표된 고 김종래(金鐘來ㆍ1927~2001) 선생의 ‘엄마 찾아 삼만리’. 이 만화는 당대의 어린이 뿐 아니라 만화를 ‘환칠’이라 업신여겼던어른들에게도 코끝 찡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명작으로 꼽힌다. 섬세한 펜터치를 기반으로 캐릭터의 리얼한 그림체가 마치 한 편의 멜로드라마를 보는 듯한 실감을 주었다. 제일출판문화사가 초판을 발행한 이후 무려 10판을 더 찍는 폭발적 인기를 누린 화제작이었다.

이 만화는 주인공 소년 금준이가 노비로 팔려간 엄마를 찾아 괴나리 봇짐을 매고 황톳길을 터덜거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마를 그리는 절절한 소년의 심정, 온갖 고초를 겪는 과정이 배경 음악이 돼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소년 금준이는 엄마를 찾아가는 길에 다양한 민초와 만난다. 탐관오리의 학정, 그로 인한 피폐한 민심. 멜로 소재라는 한계를 넘어 전후의 찌들었던 사회상과 부패상을 조선시대를 빗대 고발하는 ‘작가 의식’까지드러냈다.

‘엄마 찾아 삼만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 명작 동화를 나름대로만화로 각색한 첫 작품이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만화의 원작인 동화는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ㆍ1846~1908)가 1886년 ‘사랑의 학교’(Cuore)란 작품집에 ‘마르코’란 제목으로 발표한 작품이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살던 소년 마르코가 돈을 벌러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떠난 엄마를 찾아 1만2,000km의 눈물겨운 여행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동화는 300판이 넘게 발행됐고, 전세계에 번역돼 감동을주었다. 만화 제목으로 등장하는 ‘삼만리’는 소년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떠났던 1만2,000km를 우리의 거리 계산법으로 환산한 수치였다.

김종래 선생은 일본 교토(京都)에서 태어나 회화전문학교에서 미술 공부를마친 뒤 47년 귀국했다. 생전의 선생은 “내 이름의 일본식 발음인 ‘쇼라이, 쇼라이’를 외치면서 주먹질을 해대는 등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교토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귀국한그는 자원입대,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54년 육군상사로 전역했다.

만화가로 이름을 떨친 것은 전역 직전 발표한 93쪽 짜리 반공만화 ‘붉은별’로였다. 60년대 이후 본격 창작을 시작한 선생은 70년대 후반 기관지와 심장계통의 지병이 생기기까지 500 편에 달하는 주옥 같은 작품을 발표해 전후 우리나라 만화사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대표작으로는 69년에 발표해 10년간 연재한 ‘도망자’를 비롯해 ‘이길 저길’ ‘황금가면’ ‘앵무새 왕자’ 등이 있다. 2001년 1월, 선생은 향년 70세를 일기로 ‘엄마를찾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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