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아련한 기억속으로 잊혀져 가는 '하시게'

꿈에그린 2008. 3. 18. 08:41

▲ 울릉도와 육지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동해호' (왼쪽의 조그만 배가 '하시게'라 불리던 배였다.
ⓒ2005 국립중앙박물관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아 아 아~~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

가수 조미미씨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의 한소절이다. 필자의 어머니가 서울 북아현동에서 울릉도까지 시집와 고향이 그리울때 먼 바다를 바라보며 자주 부르곤 했던 노래다. 그래서 필자 역시 생생히 기억하고 또 가끔 노래방에 가면 한번쯤 어머니를 생각하며 불러 보곤한다.

1960년~70년대에 울릉도와 육지를 잇는 교통수단으로 '청룡호'와 '동해호'라는 연락선이 있었다. 당시의 도동 항구는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선가장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연락선이 도착하면 부두에서 멀리 바다에 떠있는 상태이고 '하시게'라고 불리는 조그만 배가 노를 저어 연락선까지 가서 섬과 배에 밧줄을 묶어 연결해 놓고 사람과 짐들을 실고 그 밧줄을 당겨가며 사람들을 내렸다.

필자도 어릴적 '하시게'를 타본 기억이 아득히 남아있다. 그때는 너무 어렸을때라 아버지가 필자를 안아 연락선에서 '하시게'로 내려놓으면 어른들이 받아 배에 내려놓았다. 필자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저 들려 다니던 물건같은 그런 느낌이 전부였다.

▲ 1960년대의 도동부두
ⓒ2005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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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도동부두
ⓒ2005 배상용
동네에서 80세 이상이 되는 동네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하시게"(はしけ)의 어원은 순수 일본말로, 거룻배 또는 거루라고도 불리우고, 돛을 달지 않고 갑판도 없이 노를 저어 움직이는데 주로 항만에서 육지와 본선(本船)사이, 또는 배와 배사이를 오가며 일을 하는 배를 일본사람들은 '하시게'라 칭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포항과 울릉도까지의 항해시간은 평균 9시간 정도. 동해의 거친 파도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결항하기 일쑤였고 일부 주민들은 어지간한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육지를 다녀온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

당시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말려 육지 도매상에 판매하는 직업을 가졌던 아버지는 육지에 한번 나가시면 한 달씩은 집을 떠나 있었다. 어머니는 그저 아버지에 대한 기다림의 나날이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서인지 조미미씨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 구절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지 않았나 싶다.

필자는 어쩌다 연락선을 타면 어릴 적 2층 침대에 누워 계속 잠만 잤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고등학교 형들은 갑판에 나가 놀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연락선 내에서 국밥을 시켜 먹은 기억도 있다. 하긴, 9시간 정도의 운항시간 이라면 식당이 있어야 할 법도 하다.

빛바랜 이런 흑백 사진들, 울릉도 주민들이라면 한두 장씩은 소장하고 있을만큼 옛추억에 대한 향수는 끈질긴가 보다. 이미 40년을 훌쩍 넘어버린, 울릉도 개척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흑백사진을 보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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