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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6일 역사속 오늘

꿈에그린 2007. 10. 26. 08:20
▶ 박정희 대통령 피살(1979)

1979년 오늘 밤 청와대 근처에서 밤의 정적을 깨고 몇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1961년 육군 소장의 계급으로 5.16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1972년 유신헌법 개헌으로 장기 집권의 토대를 구축한 박정희 대통령이 예순 두 살을 일기로 파란 만장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날 오후 삽교천 방조제 준공행사에 참석한 뒤 서울로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와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등 측근들과 연회에 참석중이었다.

연회 도중 부마사태 등 최근의 시국 상황을 놓고 차지철과 심한 언쟁을 벌인 김재규는 밖으로 나와 미리 준비해 놓은 권총을 가지고 들어가 차지철을 사살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박 대통령은 곧 바로 국군 수도 통합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머리와 가슴 등에 치명상을 입고 절명했다.

김재규의 총격을 신호로 중앙정보부원들은 M16소총으로 옆방에 있던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을 사살했다.

육군과학 수사연구소 감식팀이 촬영한 현장사진은 당시의 상황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김재규는 다음 날 새벽 군수사기관에 체포됐다.

궁정동에 울린 총성은 박정희 장기 집권 18년이 막을 내리게 만들면서 유신체제를 붕괴시켰지만 12.12 쿠데타에 따른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등장과 다음해 이어진 5.18 광주 민주 항쟁 등 또 다른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삽교천 방조제 준공(1979)

1979년 오늘 삽교천 방조제의 준공식을 가졌다.

길이 3,360미터로 삽교천 하구를 가로 막은 인공담수호는 충남 당진, 아산, 예산, 홍성 4개 시, 군 22개면에 이르는 삽교천 유역의 전농토를 전천후 농토로 개발하기 위해 계획된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이었다.

삽교천 담수호로 4개 시군의 관개용수가 해결됐고 개간과 간척으로 농지가 약 5,000ha로 확대되면서 식량증산과 경제작물 재배로 농가소득이 증대됐다.

또한 서울 당진 간 육로 거리가 40km나 단축됐다.

▶ 국군 압록강변 도달(1950)

1950년 오늘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한반도와 만주의 국경지역인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했다.

한만국경선에서의 명령을 받은 우리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의 선봉부대가 최초로 압록강변에 도달했다.

지난 9월 16일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한 지 41일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부대도 중국군의 공격을 받아 급히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사살(1909년)

1909년 오늘 오전 9시 만주의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안중근 의사는 나머지 총탄을 발사해 다른 일본 정부 요인들에게도 중상을 입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과 특파독립대장으로 거사를 치밀하게 준비해 온 안중근 의사는 거사일인 오늘 일본인으로 가장해 하얼빈 역에 잠입했다.

안의사는 이토오 히로부미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환영 인파사이를 헤치고 나와 8연발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

이토 히로부미는 배와 등에 세발의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경비경에 체포돼 일본 관헌에게 넘겨졌다.

여순 감옥에 수감된 안의사는 이어진 재판에서 을사 조약으로 조선을 침탈한 이토오 히로부미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죄인이어서 자신이 동양인을 대표해서 처단한 것이라며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안의사는 일제의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사형을 선고받고 거사가 있은 지 넉 달 뒤인 1910년 3월 26일 31살의 나이로 순국했다.

[1955] 베트남 공화국 출범

[1982] 유엔총회, 이스라엘 축출안 부결

[2001] 경복궁 홍례문 복원

[2004] 철원 최전방 철책선 절단 사건 발생
10월 26일 역사 속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