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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자기가 배달해야 한다고..

꿈에그린 2007. 11. 8. 09:22
 


      "누가 이 편지를 주었는지 빨리 말해봐." "흐흐흑~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는 너를 혼내려고 묻는 게 아니야. 누가 이런 편지를 줬는지 궁금해서 그래." "우체부 아저씨요. 김만석 우체부 아저씨…." 딸 아이는 이름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그 아저씨가 아빠의 답장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가슴이 울컥 하는 걸 간신히 누르며 말했습니다. "아빠는 일 년 전에 돌아가셨잖아. 근데 어떻게 하늘나라에서 편지가 올 거란 생각을 한 거니. 하늘나라는 편지를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어." 아홉 살짜리 딸애는 다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이 상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우체부 아저씨란 사람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딸애가 덮고 자는 이불을 빨기 위해 장롱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툭'하고 뭔가 떨어지는 거였지요. 알록달록한 편지 묶음이었습니다. '혹시 남자친구라도 생겼나'하는 호기심에 슬며시 풀어보았습니다. 요즘엔 유치원 애들까지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놀랍게도 '보내는 사람' 밑에는 남편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일 년 전 화재사고로 죽은 남편이 딸아이에게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죠.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당황하다 못해 충격을 받은 나는 아이에게 편지들의 출처를 캐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딸아이가 털어놓은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편지쓰기를 배웠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멀리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고 하자 딸아이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있는 하늘나라에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지구 반대편에도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땅의 반대편인 하늘에도 편지를 보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한 딸아이는 어느 날 학교 교무실에 우편물을 전하고 나오던 우체부 아저씨를 발견했습니다. 그분을 쫓아가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아저씨 하늘나라에도 편지 가지예?" "왜, 하늘나라에 누가 있는데?" "우리 아빠가예." 철없는 어린아이의 말에 그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럼 아저씨가 주소를 크게 써서 아빠에게 보내 드릴게. 일본에도 가고 아프리카에도 가는데 하늘나라도 가고 말고. 내일 네 주소를 써서 편지를 갖고 오너라." 아저씨는 정말 다음날 학교를 다시 들러주었습니다. 딸아이는 아저씨에게 그동안 모아놓은 편지를 건네주었고 그분은 이주일 후 아빠에게서 답장이 왔다며 정말 아빠 이름으로 보낸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그 뒤로 계속되는 딸아이의 편지와 보이지 않는 아빠의 답장. 두 달 가까이 이어지던 편지 왕래는 별안간 다른 아저씨의 등장으로 끝이 났습니다. 김만석 아저씨보다 더 젊었던 그 아저씨가 건네준 편지 안에는 '이제는 아빠가 다시 편지를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이 편지가 아빠의 마지막 편지'라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았음직한 이런 일이 내 딸에게도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을 수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나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일어나 그 우편물을 취급한 우체국으로 갔습니다. 아빠 없는 딸아이가 가여웠을 테고 그래서 용기를 주고 싶었던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한편으로 딸아이에게 괜한 희망을 갖게 한 그분이 미워졌습니다. 그래서 왜 그랬느냐고 따지기라도 할 요량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지요. 하지만 허겁지겁 달려간 우체국에서 '김만석 씨'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정년퇴임을 하고 없었습니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직원 한 명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아 그 일이라면 잘 아는 친구가 있습니다. 불러드리죠." 뜻밖에도 그가 불러준 사람은 우리 딸에게 남편의 마지막 편지를 건넨 젊은 우체부 였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김만석 씨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그분이 갑자기 윗분들에게 몇 달만 더 일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어요. 저는 온지 얼마 안 된지라 그분이 돈이 궁해서 저런가보다 했었죠. 그런데 그때가 아주머니의 딸을 만난 때였더라구요.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자기가 꼭 배달해야만 하는 편지가 있다고 했어요. 위에서는 두 달만을 허락했고 그 뒤의 마지막 편지를 저한테 부탁하셨죠. 참 좋으신 분이었어요. 자기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어 봐서 아버지 없는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그 편지는 꼭 자기가 배달해야 된다고요." + 월간 낮은 울타리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中에서 +